'아프리카의 키쿠유 부족이 자신의 전통 문화를 지키기 위해 지구 밖 소행성에 건설한 유토피아의 이름. 마사이 말로 kiri는 산, nyaga는 빛. 인류가 비롯된 신성한 기원지를 의미한다.'
라고 표지에 설명이 붙어있는 이 책은 10월 15일 대학로 KFC 앞 노상 매대에서 나와 만났다. 이름을 알수 없는 출판사에서 나온 수많은 책들 사이에 약간 모서리가 헐고 누군가의 손을 많이 거쳤을듯한 삭은 모습으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책. 두 권 합쳐 6000원의 가격을 치르고 풀무질에도 들렀으니 이날은 진짜 많은 일이 있었네.
이름은 들었지만 학교 도서관에서도 손이 안가서 안보던 책인데 이것도 인연이지 싶어서 들고 와서 지금 막 다 읽었다. 이거 읽는 중도 읽고 나서도 마음이 싸한것이. 잘쓴 책이구나 좋은 소설이구나. 잘 샀구나.
잃어버린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 문명을 겪고 전통을 버리고, 자기의 뿌리를 잊고 그 자리를 기술과 문명으로 채워버린 이야기. 문화와 문명은 분명 다른 것이라 문화를 지키고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모르는, 그렇지만 분명히 문화를 잃고 문명만이 남은 지구상 수많은 나라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 느낌도 나지만 앞으로도 계속 결코 이어지지는 못하겟지. 전통을 잃고 문명에 눈이 멀어 문화의 자리를 문명으로 대체하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견디지 못한 이야기의 주인공, 결국 유토피아를 만들어 그곳으로 떠난다. 키리냐가는 우리가 지난 시기 오래 되고 구식이라고 치부하고 미련없이 버려버린 풍습을 지키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만든 곳.
발부터 나온 아이는 부정하니 죽여야 한다는 풍습을 그대로 따르고, 여자는 남자에게 속한 것이고 여자는 글을 배울 수 없다는 지침을 지키며 사는 키리냐가는 잃어버린 문화의 복원이다. 예전에 살던 대로, 자연과 융합하며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삶 그대로를 살기 위해서 주술사이자 지혜를 가진 사람인 <문두무구>는 문명과 박제된 문화의 중간에서 외줄을 타듯, 키리냐가의 사람들을 문화 그대로로 남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문명의 손길은 조금씩 들어오고, 가장 큰 차이는 문두무구는 서양 문명을 배우고 겪고 그 단점을 알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키리냐가를 만든 것이었으나, 이주해 온 것이 아닌 키리냐가에서 나고 자란 주민들은 문명이 가진 해악을 전혀 모른 채 그렇게 살아 왔기에 새로운 물건과 기술은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차이. 문명을 겪고 선택한 사람과 문명이 뭔지 몰랐다가 나중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근본부터 다르다고 할까.
문두무구에게는 키리냐가는 그 자체로 자신이 겪은 문명에 대한 하나의 조화로운 유토피아였기에 다르게 보면 대안이 아니라 도피였을 수도 있다고 보지만, 주민들에게 키리냐가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문명을 약간이라도 겪은 이상 키리냐가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자신들을 구속하는 미신만이 가득한 삶이었던 것 같다. 터진 둑을 아이의 팔 하나로 막을 수 없듯, 문두무구는 결국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었고 키리냐가도 다른 어떤 문화권이 여지껏 그러했듯 문화를 버리고 문명으로 향하는 흐름을 그대로 겪는데. 이건 정말로 동아시아 내지는 서양이 아닌 문화권 모두가 겪었던 근대화 과정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근대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고.
고유의 문화라는 맥락이 끊기고 그 자리가 문명으로 '치환'된 이후 수십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고궁을 둘러보고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과거 그 '어떤', 한때 있었던 문화에 대한 환상인가, 아니면 아직까지 우리가 자랑스럽게 계승하고 있는 전통인가. 지금 우리는 키리냐가에서 말하는 주민들이 문명을 받아들인 수 년 후와 마찬가지의 상황은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가볍게만은 읽을 수 없었던 책이다.
우연히 만나서 나에게까지 온 이 책. 어떤 SF가 이런 식으로 문명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SF라는 문학 자체가 기술과 문명을 바탕으로 씌여진다는 통념이 대부분인 인식 속에서.
[인상깊은 구절]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은 한 사회가 유토피아가 될 수 있는 시기란 아주 잠깐이라는 점이었다. 일단 한 사회가 완전해지면 그 사회는 변화하지 않아야만 유토피아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과 발전은 사회의 본능이었다. 나는 키리냐가가 유토피아가 되었던 순간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 순간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왔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키리냐가 2권 , 마이크 레스닉, 524쪽. 열린책들 2000
yes24 키리냐가 서평에 등록했더니 등록됐다. 와 공중파다! 쪽팔린다!
라고 표지에 설명이 붙어있는 이 책은 10월 15일 대학로 KFC 앞 노상 매대에서 나와 만났다. 이름을 알수 없는 출판사에서 나온 수많은 책들 사이에 약간 모서리가 헐고 누군가의 손을 많이 거쳤을듯한 삭은 모습으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책. 두 권 합쳐 6000원의 가격을 치르고 풀무질에도 들렀으니 이날은 진짜 많은 일이 있었네.
이름은 들었지만 학교 도서관에서도 손이 안가서 안보던 책인데 이것도 인연이지 싶어서 들고 와서 지금 막 다 읽었다. 이거 읽는 중도 읽고 나서도 마음이 싸한것이. 잘쓴 책이구나 좋은 소설이구나. 잘 샀구나.
잃어버린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 문명을 겪고 전통을 버리고, 자기의 뿌리를 잊고 그 자리를 기술과 문명으로 채워버린 이야기. 문화와 문명은 분명 다른 것이라 문화를 지키고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모르는, 그렇지만 분명히 문화를 잃고 문명만이 남은 지구상 수많은 나라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 느낌도 나지만 앞으로도 계속 결코 이어지지는 못하겟지. 전통을 잃고 문명에 눈이 멀어 문화의 자리를 문명으로 대체하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견디지 못한 이야기의 주인공, 결국 유토피아를 만들어 그곳으로 떠난다. 키리냐가는 우리가 지난 시기 오래 되고 구식이라고 치부하고 미련없이 버려버린 풍습을 지키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만든 곳.
발부터 나온 아이는 부정하니 죽여야 한다는 풍습을 그대로 따르고, 여자는 남자에게 속한 것이고 여자는 글을 배울 수 없다는 지침을 지키며 사는 키리냐가는 잃어버린 문화의 복원이다. 예전에 살던 대로, 자연과 융합하며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삶 그대로를 살기 위해서 주술사이자 지혜를 가진 사람인 <문두무구>는 문명과 박제된 문화의 중간에서 외줄을 타듯, 키리냐가의 사람들을 문화 그대로로 남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문명의 손길은 조금씩 들어오고, 가장 큰 차이는 문두무구는 서양 문명을 배우고 겪고 그 단점을 알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키리냐가를 만든 것이었으나, 이주해 온 것이 아닌 키리냐가에서 나고 자란 주민들은 문명이 가진 해악을 전혀 모른 채 그렇게 살아 왔기에 새로운 물건과 기술은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차이. 문명을 겪고 선택한 사람과 문명이 뭔지 몰랐다가 나중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근본부터 다르다고 할까.
문두무구에게는 키리냐가는 그 자체로 자신이 겪은 문명에 대한 하나의 조화로운 유토피아였기에 다르게 보면 대안이 아니라 도피였을 수도 있다고 보지만, 주민들에게 키리냐가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문명을 약간이라도 겪은 이상 키리냐가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자신들을 구속하는 미신만이 가득한 삶이었던 것 같다. 터진 둑을 아이의 팔 하나로 막을 수 없듯, 문두무구는 결국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었고 키리냐가도 다른 어떤 문화권이 여지껏 그러했듯 문화를 버리고 문명으로 향하는 흐름을 그대로 겪는데. 이건 정말로 동아시아 내지는 서양이 아닌 문화권 모두가 겪었던 근대화 과정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근대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고.
고유의 문화라는 맥락이 끊기고 그 자리가 문명으로 '치환'된 이후 수십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고궁을 둘러보고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과거 그 '어떤', 한때 있었던 문화에 대한 환상인가, 아니면 아직까지 우리가 자랑스럽게 계승하고 있는 전통인가. 지금 우리는 키리냐가에서 말하는 주민들이 문명을 받아들인 수 년 후와 마찬가지의 상황은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가볍게만은 읽을 수 없었던 책이다.
우연히 만나서 나에게까지 온 이 책. 어떤 SF가 이런 식으로 문명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SF라는 문학 자체가 기술과 문명을 바탕으로 씌여진다는 통념이 대부분인 인식 속에서.
[인상깊은 구절]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은 한 사회가 유토피아가 될 수 있는 시기란 아주 잠깐이라는 점이었다. 일단 한 사회가 완전해지면 그 사회는 변화하지 않아야만 유토피아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과 발전은 사회의 본능이었다. 나는 키리냐가가 유토피아가 되었던 순간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 순간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왔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키리냐가 2권 , 마이크 레스닉, 524쪽. 열린책들 2000
yes24 키리냐가 서평에 등록했더니 등록됐다. 와 공중파다! 쪽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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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z 2004/10/17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감히 책 한권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오래된 미래>>라는 책입니다. 꽤나 유명한 책이니 이미 읽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쓰신 글을 보고는 이 책도 재미있게 보시지 않을까 해서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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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icat 2004/10/17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앗 감사합니다! 도서관 서가에서 몇 번 그냥 지나친 책이네요(검색해봤음; ). 꼭 읽어볼께요. 앞으로도 종종 책소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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